57mm 대전차 포 (6파운드) 동란기 국군대전차 포(이탈레리)
이병장
2012-04-25, HIT: 4092, 이순성, 벤더스네치외 25명의 회원님이 이 작품을 좋아합니다.
지금 소개해 드리는 모형은 이탈레리에서 나온 57mm대전차포입니다. 미국식으론 57mm이고 영국식으로는 6파운드 포인데 이 대포는 원래 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군 전차를 상대로 싸웠던 대전차포라고 합니다.

제가 이 킷트를 구입한 것은 한 17년 가까이 됩니다. 당시 155mm를 찾다가 우연히 구입을 한 것인데 당시에 저는 버스로 1시간 반 시골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라 토요일이나 일요일 서울에 오면 모형점을 탐방했었습니다. 주로 들렸던 곳이 동서울 터미널에서 가까웠던 왕십리디오라마나 어린이 대공원쪽의 갑산하비 그리고 시간이 나면 동도공고 근처의 마포디오라마 그리고 지금도 있는 우주모형등을 들려보곤 했습니다. 워낙 모형지에서도 알려진 곳인지라 구경거리도 많았지만 제가 구하고자 했던 것은 서울이라고 해도 이미 절판되고 없고 당시 충주의 첼린저 모형 사장님의 말씀이 늘 귓전에 맴돌았습니다. 자신의 가게에 없는 물건은 "서울시내를 다녀도 쉽게 구하시기 어려울 것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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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충주에는 모형점이 2개가 있었는데 챌린저 모형의 경우는 모형지 과월호도 있었고 사장님이 모형에 대한 많은 이야기 거리와 국내 모형계의 흐름과 분위기등을 많이 말씀해 주셨고 제품의 구색이라든가 갖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원래 서울에서 사업을 하시다가 당시 유행하는 RC모형과 관련하여 지역에 터를 잡고 대외적으로도 활동을 많이 하신 분인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당시 어디에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제가 잘 다니던 모형점에서 이 킷트를 사서 조립을 했고 도색을 하는 것을 잊고 있다가 다른 모형 칠할 때 덤으로 칠을 하게되었고 당시엔 별로 관심도 없었고 솔직히 '꿩 대신 닭'이라고 생각하며 제가 간절히 원하던 155mm대신하여 소련군과 인민군이 장비했던 즈베즈다의 122mm에 만족하며 실력은 없는 놈이 눈만 높아져서 105mm디오라마 만든다고 일개포대 6문 정도를 사서 위장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거쯔의 올을 빼고 녹차잎 홍차잎으로 나름만든다고 만들었는데 인형을 보면 눈은 순 왕눈이고 어쩌다 모형전시회에 가서 보고 있노라면 왜들 그리 잘들 만드시는지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형점에 들려 실제 만든 것을 보고 책을 보고 해봐도 쉽지가 않아 제멋대로 하다보니 아직까지 실력은 늘지 않고 혼자 즐기는 생활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름 이것도 재미있고 일부러 신경을 곤두세우며 만들 필요까지는 못 느끼지만 어렵게 구한 킷트인 만큼 정성을 다한다면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즐거워 질 것 같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장비의 도색은 약간회색 느낌이 나는 국방색으로 칠하였고 복잡하게 먹선을 넣거나 하는 작업은 하지 못했으며 그냥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에어브러쉬로 뿌려 주었습니다. 나머지는 세필로 조금 마무리하였고 대전차포 다운 느낌을 살려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습니다. 작다 보니 인형을 칠하듯 세밀하게 해야 하는데 실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은 육군사진집에 나오는 사진인데 인터넷에도 자주 떠도는 사진입니다. 사진의 촬영지가 48년 6월 미 병기학교 대구 라고 하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포병창설일 보다는 빠르기는 하지만 당시 포병훈련소가 용산과 진해에 6월에 만들어지는데 굳이 포의 수리나 장비관리를 공부하는 병기학교에서 실사격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고 위험한 사격훈련인데 미고문관과 병력들의 복장이 정복과 정모 사수의 경우는 전투모를 쓰고 실사격을 하는 장면이 요즘 시각으로 보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진집의 편집과정에서 오류가 있는 것이 있긴 하지만 이 사진의 출처가 정확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사격하는 포의 견인고리가 오른쪽 가신에 있어 모형과는 다르고 그렇다고 포다리를 변형시킬 수도 없고 포에 따라 M114 155mm의 경우는 포의 견인 고리가 왼쪽에 있는데 105mm는 오른쪽에 있고 이포도 오른쪽에 있는데 이포의 실물은 오른쪽인데 모형은 왼쪽입니다. 아무튼 연구해 봐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진은 의정부 전투에서 적전차를 상대로 사격을 준비하는 장면입니다.

이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치 않게 알게 되었는데 그 기록은 김풍익 소령의 일대기를 적은 병학사(참전용사 강창구님이 만드신 군사출판사로 10여년 전에도 전쟁기념관에 판매처가 있었고 강창구사장님이 직접판매 했었습니다.)에서 발행한 "내 젊음 조국에"의 책의 끝편에 등장합니다.

당시 문재준 대위가 대전차 포 중대장으로 격전을 치르는데 대전차 폭탄이 없어 북쪽의 전차에 고폭탄을 쏘며 안타까워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픽션이 아니고 전투기록을 보고 만든 것으로 봤을 때 대전차 포대에 대전차 포탄을 주고가지 않은 장면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며칠전 홍경호님을 통해 성함을 알게된 "최석신장군"님이 당시 김계원 중령의 보좌관(대위)으로 나오고 당시 이 사진이 촬영된 곳에 출동을 하셔서 전투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포병교도대대장이었던 김풍익 소령이 동란전 인천의 바닷가에 이 대포를 이끌고 간조시 타켓을 세우고 실사격을 했다는 내용이 있는 것을 봤을 때 포병학교에서는 나름 이포에 대한 연구와 교리를 만들고 공부했을 것이라 생각되며 그런데도 초기 전차 때문에 발생한 안타까운 희생에 충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당시 57mm대전차 포대는 보병연대포로 편성(원래 미군이나 연합군도 간접사격 보다는 직접사격용으로 관리)하여 전방의 연대에 1개 중대씩 (6문) 편성을 했으며 당시의 기록을 보니 각소대에 2문씩 3개소대에 57mm가 배치되었고 (포병이 일반적으로 쓰는 반장 보다는 분대장이 포1문을 분대장 포함 10명을 지휘통솔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주목한 점은 그 밖에도 대전차 지뢰 소대가 편성되어(이것은 제 추측인데) 소대본부에 포병이나 공병에서 볼 수 있는 고유의 측지병과 제도병이 배치되어 대전차 지뢰반에 통보하고 3개분대의 대전차지뢰분대가 있었다는 데 중점을 두워야 하는데 초기 나름 준비를 하고 대비를 했으나 그 결과는 춘천전투처럼 소대장(심일 소령)이 직접 사격을 하여 자주포를 기동불능하게 하여 육탄으로 공격 적의 공세를 막았다는 것은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는지 조금이나마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대전차 중대의 초기 구성원들은 포병에서 만들어지고 보병연대에 편성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복잡한 간접사격의 대포를 주로 운용하는 지금의 야전포병대에서는 잊혀진 것처럼 되어 있는 것이 아쉽고 당시의 편재를 이해하고 보완 발전시키기엔 대전차 무기의 발전이 괄목만하고 일반 소총중대에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전차 장비들이 계속 배치되다보니 이젠 잊혀지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엔 이 분들이 몸바쳐 적전차를 막았고 이분들 때문에 북한의 전차전력의 실체를 파악하고 미국이 새로운 결심을 하고 신무기를 투입하지 않았나 감히 생각해 봅니다.
이 모형의 그림이 있는 이탈레리 카탈로그입니다. 88년도 것인데 앞에서 말씀드린 여러 모형점 중에 한곳에서 구한 것 같은데 어디에서 구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벌써25년이 다 되어가는데 당시의 이탈레리의 제품을 보면 지금봐도 다양한 것 같고 다시 재판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단순하고 작은 모형이지만 이속에 역사가 있고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이글을 접고자 합니다. 오래전 홍경호님이 만드신 57mm대전차포와 디오라마를 기억합니다. 가족사에 이분들의 모습이 계시다고 하셨고 직접 격전지를 다녀오기도 하셨던 분의 작품을 저 같은 사람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배운 그 느낌을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조금은 길어진 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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