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박격포 M2동란 후 국군의 야전포병에서 보병으로 전환(자작)
이병장
2012-05-08, HIT: 5941, 이순성, 섭이아빠외 34명의 회원님이 이 작품을 좋아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아마도 보병의 소화기나 공용화기를 디오라마와 함께 만들어 소개하신 분들은 무척이나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독일군이나 미군의 장비는 너무도 많아 열거하기도 힘이 들 것입니다.

지금 소개해 드리는 모형은 6.25동란시 미군이 사용하다가 우리군이 사용을 하고 최근은 아니지만 90년대 초까지도 우리군이 사용하던 편제장비였지만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조용히 사라진 장비이기에 의미를 두고 만들어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박격포는 보병부대에서 보병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장비고 대부분 경량화 되어 있어 친숙하긴 하지만 잘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작품을 추천하기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면 추천 버튼을 눌러주세요. 제작자에게 많은 격려가 됩니다
이 장비는 다른 박격포가 활강식(포탄에 날개가 달림)인데 비하여 라이플 포로 강선이 있고 박격포의 구경에 따라 3종류로 구분하는데 경(輕) 중(中) 중(重)으로 구분할 때 중(重)박격포에 포함되며 사격방식은 박격포나 일반 곡사포가 사각(고각+고저)를 이용하여 사격하는 것과는 달리 포탄뒤에 있는 장약(치즈처럼 생김)을 미세하게 조정하여 사격하는 특이한 사격방식을 취하기에 정밀한 사격에서는 변수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병부대의 최악의 힘든 주특기가 81mm 전포요원으로 알고 있는데 주로 도수운반을 하고 걸어서 이동하는데 비해 이 장비는 차량화되어 이동하므로 한결 수월한 장비이긴 하나 땅에 내려놓고 운용시엔 일반 곡사포나 무거운 장비를 운용하는 것과 비슷하기에 위험성이 수반되고 군제대시 삽질과 곡갱이질 함마질의 달인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군이 최초에 이 박격포를 사용 격전을 벌인 것이 오산전투에서 스미드 부대가 105mm를 후방에 배치할 때 이 박격포를 보병의 근접화기로 1개소대(4문이 소대인데 2문 운용)를 운용하여 북한 인민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결과는 미군의 패퇴로 끝나 버렸습니다.

그 이후에 미군이 직접 개입을 하고 미군의 보병연대의 편제화기로 보통 3개소대(12문)을 운용하여 1개소대(4문)가 1개대대를 직접 지원하는 형태로 운용을 하는데 보통 4문의 사격지대가 200m로 105mm곡사포 1개포대(6문)의 사격지대가 180m인것을 감안할 때 운용 병력대 효과가 크고 조명탄의 조도 또한 85만촉광으로 105mm곡사포에 비해 밝고 근접지원이 용이하기에 화력운용 말고도 조명지원용으로도 많이 쓰였던 장비입니다.

원래 이 화포가 미군에 장비될 때는 화학탄 사격용으로 개발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과거 동란시 미군의 화학병과에서 백린연막탄(WP)탄 사격용으로 화학박격포 대대를 운용하였는데 동란시 미군 뿐 아니라 국군을 뒤에서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화력지원용으로 지원을 해주었는데 당시 대대장이 쓴 글을 보면 이 박격포를 운용하는데 사거리의 열세와 우수한 장교단이 있긴 했지만 포술을 획득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음을 토로하면서 어려운 화학주특기와 함께 포술운용에 대한 것을 배워야 하는 지휘관들과 사필요원의 고충이 남아 있는 것을 봤을 때 무기의 제원과 성능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운용 요원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연대전투단을 형성할 때 가장 중요한 곡사화기가 포병의 105mm와 4.2"이고 이것이 당시엔 국군의 화력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기록에 미군이 운용하는 장면은 많이 볼 수 있으나 국군이 운용하는 장면의 사진은 보기 힘듭니다. 그 후 우리군의 사진을 보면 사거리가 늘어난 M30이 유명하고 실제 베트남의 안캐패스 전투나 실전에서 M30은 볼 수 있으나 M2는 국군도 도태한 장비여서 사진으로 잘 볼 수 없는 장비입니다.
또한 이 작고 약할 것 같은 박격포도 정밀기록사격과 기상제원을 수집하는 단계가 있고 연구하면 연구할 수록 복잡다양한 장비라는 데 현역시절 놀람을 금치 못했습니다. 다만 사거리가 짧고 대량의 사격을 연속적 그리고 지속적으로 할 경우 곡사포에 비해 명중률이 떨어지고 오래할 수 없기에 대량의 사격을 원하거나 대포병 사격을 할 경우엔 포병사격의 힘을 빌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고 실제 전장에서는 포병사격과의 협조를 통하여 사격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존재였으나 동란 초기 연대급에서 대대를 지원해주는 화력체계는 57mm대전차포 정도였으며 간접사격을 할 수 있는 화포는 없었기에 일선의 부대에게 북한군의 침입은 커다란 충격임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북한 인민군은 구소련의 120mm박격포와 76mm대전차 포등 간접사격이 가능한 화력수단을 가지고 국군의 진지를 맹타격 했으나 우리군이 가지고 있던 최고의 화력은 105mm M3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충분치 않아 포병이 전방에서 육박전을 하면서 화력을 쏟아 부어 중과부적인 상태에서 적을 상대했습니다. 화력을 중시하는 소련군의 전술을 배운 북한의 전술을 간파는 했었지만 당시 우리 국군은 너무도 약했고 2차 세계 대전의 승리자였던 미군도 북한군의 전술에 패배를 했는데 공군력을 제외한 지상화력에서는 객관적으로 많이 밀렸고 포술운용에서도 많은 문제를 드러냈던 것이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군은 동란 이후 이 장비를 다시 군단포병의 직할대로 중(重)박격포대대를 창설하는데 종전 후 54년 9월에 당시 대대의 4.2"장비 대수는 36문으로 M2로 나온 것도 있지만 어떤 사진엔 M30으로 나오며 정확한 건 알기 어렵고 60년대 초반까지 활약하다가 그 이후 없어진 것인지 사단포병으로 흡수된 것인지 아이러닉합니다.

짧은 사거리의 이 박격포를 사단도 아닌 군단에 배치한 것 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데 사단에서 운용할 땐 12문인데 당시엔 경장비 사단과 중장비 사단으로 구분을 했는데 경장비 사단엔 없고 중장비 사단에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해체된 중박격포 대대의 깃발은 육사의 육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통상 대대급 부대의 깃발은 병과휘장에 단위표시를 하는데 특이하게도 이 부대의 깃발들은 고유문양으로 나타내 있어 특이한 독립성인지 아니면 당시의 흐름인지 알 수 없습니다.

M30의 경우는 기계화 보병의 경우 대대급에 1개소대씩 편제가 되어 장갑차에 탑재하여 운용을 합니다.

과거 돌아온 국군포로 조창호 중위님이 관측장교로 근무하실 때 야전포병에서 이 포를 운용했다고 합니다. 설악산 전투에서인가 본대와 멀리 떨어진 조중위님은 결국 포로가 되었습니다.
보기엔 약한 장비이고 곡사포에 비하면 별볼일 없고 간단한 장비가 실제 운용하는데 있어서는 사필요원의 경우엔(관측병이나 사격지휘소요원 그리고 측각수나 사수 부사수) 곡사포와 별로 다른 것이 없고 과거 제가 군생활 할 때 사필요원 중 포술담당요원은 포병학교에서 양성된 병력이었고 부사관들도 이쪽에서 양성된 병력이었습니다.
제가 현역시절에 이 장비를 운용했다면 여러분 믿으시겠습니까?

그것도 80년도 후반에서 90년도 초까지 실제 이 골동품 박격포를 이용하여 고폭탄도 몇 트럭 쏴봤고 야간에 비상이 걸려 조명탄도 여러번 쏴봤습니다.

그것도 제대 말년까지 불려 다니며 쏴봤는데 당시 줄을 잘못선 관계로 군번이 빠르다는 이유로 105mm곡사포 사격지휘요원으로 교육을 받고 후방의 보병사단 보충대에 있을때 군번이 가장 빨랐던 2명의 병사는 보병연대로 나머지6명은 사단포병에서 155mm와 105mm를 다룰 때 저는 또 연대 본부에 있지 않고 당시 사단의 전방이라고 할 수 있는 해안선에 나가 이 포를 보고 저건 교육받을 때 본 105mm보다 더 구식이고 과연 어떤 장비일까 생각을 해봤는데 당시 지휘관이 연대본부에서 저를 데리고 가면서 했던 이야기가 "너 도판 그릴 수 있냐?"에 저는 귀를 의심 했습니다.

포병부대에만 있을 것 같은 사격도판(하얀 방안지를 이용하여 좌표를 찍어 방위각과 편각을 따내는 장비)이 이 원시적인 모양의 화포에 있다는 것에 놀랐고 예비군 선배들이 와서 자신도 못쏴본 6.25때 장비를 가지고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통상적으로 GFT나 GST도표식 사표(자처럼 생긴)가 있어야 하는 장비인데 M30에만 있지 동란시 넘어온 이 장비엔 없다 보니 선배들이나 저의 사수는 책자식 사표를 이용 이 장비를 운용하고 포술을 연마했습니다.

M30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저는 나름의 역사를 가진 이 장비를 이해하고 좋아합니다.
지금은 전쟁기념관에서 볼 수 있고 당시에도 낡았지만 애지 중지 장비를 관리하던 부대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최대 사거리가 4000m에도 못미치지만 한때는 화력를 투사하던 무기로 영화로 보면 맥주병 따는 소리로 작게 느껴지지만 겨울밤 비상이 걸려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듣던 초기의 파열음은 천둥소리처럼 컷던 것 같습니다.
말년이 되니 뻥튀기 튀기는 소리로 작게 느껴지고 조금 익숙해지니 제대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유물이 된 4.2" M2박격포... 포병의 무기였다 보병의 무기였다 미군의 경우엔 화학병의 무기였고 M30으로 진화하여 궤도차량에 탑재되어 기동력을 자랑하더니 지금은 120mm로 바뀐다고 하는데 M30의 경우 남아있는 탄약으로 인해 당분간 현역으로 남아 있을 듯 합니다.

M2의 경우 무게가 161kg정도이고 최대사거리는 탄종에 따라 다르나 4km이고 최소사거리는 500m 정도입니다.
M30의 경우는 무게가 302Kg 정도이고 최대사거리는 6800m정도로 운용요원은 문당6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형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옆에 놓고 비교한 것입니다. M30의 경우 아카데미에서 케네디 찦을 사면 덤으로 주기도 하고 타미아에서 복제한 제품도 있습니다. 과거 전쟁기념관의 제병협동훈련 디오라마에 보면 4.2"M30을 81mm로 가정하여 모형으로 만든 장면을 본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81mm로 하면 작아서 보이지 않아서 일 수도 있도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킷트라 그러하지 않을까 합니다.
포열과 포판을 만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잘 안나왔습니다.
처음 M2를 만들고 난 후 크기가 어느 정도 인지 감 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 곡사포 모형에 비하면 작고 볼품이 없지만 나름의 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포판의 경우 플라판에 에폭쉬 퍼티를 넣고 다듬었으며 포신은 알미늄 봉이고 황동판을 이용 포다리와 자잘한 부분을 만들었습니다.
순간접착제를 쓰긴 했지만 잘 떨어지고 부품을 깍았는데 잊어버려 찾는데 한참 걸리기 했지만 완성을 했습니다.
실제 전쟁기념관에 있는 장비로 도색은 이병장이 운용하던 장비와 동일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국군이 운용했던 곡사화기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모형과 직접 관련 없는 따분한 전사와 그와 관련된 저의 사담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 결 !
이 작품을 추천하기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면 추천 버튼을 눌러주세요. 제작자에게 많은 격려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