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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모델 비화 14부, 70~80년대 아카데미 카피판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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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당시는 국가적으로 전국민 과학화에 매진하던 시기였는데
아폴로 우주인들이 내한하고 서울과학관에 진품 월석도 전시하는 등
어린 저에게 신기하고 재미있고 놀라운 일들이 정말 많이 기억납니다.
과학을 가장 좋아하던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시대가 70년대입니다.
아폴로 우주인들이 내한하고 서울과학관에 진품 월석도 전시하는 등
어린 저에게 신기하고 재미있고 놀라운 일들이 정말 많이 기억납니다.
과학을 가장 좋아하던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시대가 70년대입니다.
지금에 비하면 인프라가 매우 부족했지만 사회 전반에 활기가 넘쳤고
(2부에서 소개한 공군참모총장배 대회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1979년에 시작)
특히 70년대 국립서울과학관, 대전중앙과학관은 지금의 어떤 과학관보다도
전시물 수준도 높았고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터치스크린 아닌 실물 모형)
제가 중학생 시절이던 1979~80년에는 주말에 서울과학관 가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2부에서 소개한 공군참모총장배 대회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1979년에 시작)
특히 70년대 국립서울과학관, 대전중앙과학관은 지금의 어떤 과학관보다도
전시물 수준도 높았고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터치스크린 아닌 실물 모형)
제가 중학생 시절이던 1979~80년에는 주말에 서울과학관 가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현재의 과학관들은 2000년대 초중반 정치권과 카르텔들이
돈빼먹기 위한 목적으로 우후죽순 날림으로 만들어져서
건물만 그럴싸하고 정작 전시물들 수준은 매우 매우 형편없습니다.
특히 과천과학관에 가보고 이 부분에서 저도 아주 화가 나고 분개해 했습니다.
1970년대 전시물 수준에도 못미치는 2000년대의 과학관이라니...


제가 70년대 타미야를 '세계최고의 과학교재 업체'라고 평가하는 부분은 정밀한 부품과 함께 실물 도면과 그림, 사진 등 해설에 충실한 조립설명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따리상들이 들여온 일본 내수판의 경우 설명서가 일본어로만 되어있어서
중학생 시절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간절하고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는지
하루만에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히라가나는 읽어도 뜻을 알 수가 없었지만
한자와 가타카나만 해독해도 대충 이해가 되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중학생 시절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간절하고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는지
하루만에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히라가나는 읽어도 뜻을 알 수가 없었지만
한자와 가타카나만 해독해도 대충 이해가 되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타미야 사장님의 자서전에 언급된 내용 중에
"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려로 타미야 제품이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되어
팔리고 있어서 놀랐다"고 하는 대목이 있고 저도 놀랐습니다.
'그래서 70년대에 타미야 제품을 ('어린이회관' 이나 '코스모스백화점' 등에서)
볼 수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의문이 해소되었습니다.
타미야 사장님은 70년대 한국이 일본에 이어 2위 시장이었다고 했습니다.
"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려로 타미야 제품이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되어
팔리고 있어서 놀랐다"고 하는 대목이 있고 저도 놀랐습니다.
'그래서 70년대에 타미야 제품을 ('어린이회관' 이나 '코스모스백화점' 등에서)
볼 수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의문이 해소되었습니다.
타미야 사장님은 70년대 한국이 일본에 이어 2위 시장이었다고 했습니다.
중국은 '대약진운동'(집단농장, 토법고로), '제사해운동'("저 새는 해로운 새다")과
'문화대혁명'의 결과로 가난한 후진국이 되어있었고
미국, 유럽 서구권의 시각에서 타미야는 일본의 신생메이커에 불과했으며
레벨, 모노그램 등 서구 메이커의 기득권에 눌려 유통도 어려웠을 겁니다.
'문화대혁명'의 결과로 가난한 후진국이 되어있었고
미국, 유럽 서구권의 시각에서 타미야는 일본의 신생메이커에 불과했으며
레벨, 모노그램 등 서구 메이커의 기득권에 눌려 유통도 어려웠을 겁니다.
지난 13부에서 언급했던 'MRC가 북미지역에서 타미야를 키워줬는데(유통 개척)
배신했다(타미야 아메리카 설립)'는 대목이 여기에서 이해가 됩니다.
배신했다(타미야 아메리카 설립)'는 대목이 여기에서 이해가 됩니다.
70년대 당시의 한국정부의 과학화 정책으로 기회를 잡은 타미야 제품은
과학교재로서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특별 수입허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의견은 "귀중한 외화소모도 걱정해야 하지만
학생들의 과학화 교육에서 얻는 국가적 미래가치가 더 크다." 였다고 했습니다.
과학교재로서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특별 수입허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의견은 "귀중한 외화소모도 걱정해야 하지만
학생들의 과학화 교육에서 얻는 국가적 미래가치가 더 크다." 였다고 했습니다.
저는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도 그 '미래가치'가 낳은 당당한 한명 입니다.
그리고 모델러라면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누군가에게는 그냥 재미를 위한 '추억의 조립식 장난감 놀이' 였었다고 할 수 있겠고
또 일부는 '부잣집 아이들의 쓸데없는 외화낭비'에 불과 했겠지만
어떤 아이들에게는 '미래 과학, 산업의 주역'으로 성장하기 위한 영감을 불어넣고
꿈을 키우게 만들어준 어마어마한 효과를 발휘한 3D, 4D교재가 프라모델이었습니다.
70년대 전세계 모형업체들 중 타미야 제품이 가장
과학교재로서의 자격이 있다는 것도 제 경험으로 증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타미야, 한국타미야는 '의욕과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 라고 생각합니다.
과학교재로서의 자격이 있다는 것도 제 경험으로 증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타미야, 한국타미야는 '의욕과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 라고 생각합니다.





7~80년대 모터2개로 구동되는 모형전차를 만들고 2채널 유선리모컨을 조작하여
전후좌우 주행을 해본 학생들은 실물 전차의 조종 원리와 구조에 대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잘 알았겠죠. (궤도가 달린 모든 중장비 포함)
('TANK' 단어(워딩)를 쓰면 탄압 당할 수 있으니 '전차' 로 표기 ㅜㅜ;)
전차의 실루엣만 봐도 피아식별이 가능하다는 것은 전시에 큰 장점이 됩니다.
적 전차의 형상, 구조, 장점과 약점들을 이미 숙지한 상태에서 군대에 가는 것입니다.
전후좌우 주행을 해본 학생들은 실물 전차의 조종 원리와 구조에 대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잘 알았겠죠. (궤도가 달린 모든 중장비 포함)
('TANK' 단어(워딩)를 쓰면 탄압 당할 수 있으니 '전차' 로 표기 ㅜㅜ;)
전차의 실루엣만 봐도 피아식별이 가능하다는 것은 전시에 큰 장점이 됩니다.
적 전차의 형상, 구조, 장점과 약점들을 이미 숙지한 상태에서 군대에 가는 것입니다.

항공기 모형을 많이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어떤 각도에서 봐도
항공기의 피아 여부와 기종(심지어 탑재 무장까지)을 식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군대, 학교에서 형식적으로 가르치는 항공기 실루엣 사면도가 실전에서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요? 어떤 각도에서 봐도 식별이 가능해야 진짜 교육이지요.
항공기의 피아 여부와 기종(심지어 탑재 무장까지)을 식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군대, 학교에서 형식적으로 가르치는 항공기 실루엣 사면도가 실전에서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요? 어떤 각도에서 봐도 식별이 가능해야 진짜 교육이지요.
70년대 '적기를 알자' 시리즈는 단지 판매를 위한 홍보 수단만이 아닌 당시로서는
국가의 명운을 건 교육이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으로부터 불과 20여년 지난 시기)
프라모델의 군사적 효과와 사례 : 1989년 경
제가 복무했었던 15사단의 강원도 철원 산악지대를 능선따라 행군하고 있었는데
산 아래에서부터 A-10이 능선 바로 옆으로 슈욱~ 하고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복무했었던 15사단의 강원도 철원 산악지대를 능선따라 행군하고 있었는데
산 아래에서부터 A-10이 능선 바로 옆으로 슈욱~ 하고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놀란 것은 A-10이 산악 계곡지형을 따라서 저공 비행을 하다가
엔진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솟구쳐 날아올랐다는 것이었고
아랫면의 무장과 파일런들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상당히 근접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대원 중에서도 무슨 항공기인지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나한테는 당연한 건데 저걸 진짜 아무도 모르는구나'
제가 평소 군사무기에 해박한 것을 알고 있었던 고참이 저한테 슬쩍 물어봤습니다.
"노병장 저거 무슨 비행기야?" 제가 슬쩍 대답해주었지요 "A-10 이요"
그 고참은 소대원들한테 아는체하며 "야 저거 A-10 이라는거야 A-10" 하고
자랑을 하는데 저는 속으로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을 했었습니다.
'아 저거를 진짜 모르네 실전에서 적기인지 아군기인지도 모르면 어떻게 하나'


타미야 사장님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 중에 당시 국내 프라모델 업계 사장님들이
박정희 대통령께 면담신청을 해서 건의를 했다고 합니다.
'타미야 외 일본 정품 수입을 막고 국내산업을 보호해 달라' 는 것이었고
박대통령의 답변은 '품질개선에 힘써달라 아직 교재로서의 품질에 많이 미흡하다
품질을 기준치 이상 달성하면 수입을 막아주겠다' 였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께 면담신청을 해서 건의를 했다고 합니다.
'타미야 외 일본 정품 수입을 막고 국내산업을 보호해 달라' 는 것이었고
박대통령의 답변은 '품질개선에 힘써달라 아직 교재로서의 품질에 많이 미흡하다
품질을 기준치 이상 달성하면 수입을 막아주겠다' 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카데미가 1979년에 자체 금형실을 만든 이유가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당대 국내 최고의 프라모델 금형 장인들을 영입하여 금형기술 발전에 힘을 쏟았는데
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신군부의 '부정축재(삥뜯기와 반대파 숙청으로 생각됩니다)' 명목으로 대성사 사장님이 구속되고 이때부터 아카데미에 황금과 같은 기회가 왔습니다.
그 당시는 그런 무서운 내막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대 국내 최고의 프라모델 금형 장인들을 영입하여 금형기술 발전에 힘을 쏟았는데
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신군부의 '부정축재(삥뜯기와 반대파 숙청으로 생각됩니다)' 명목으로 대성사 사장님이 구속되고 이때부터 아카데미에 황금과 같은 기회가 왔습니다.
그 당시는 그런 무서운 내막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타미야 제품의 수급에 커다란 차질이 생기자(나머지 일본 프라모델들은 별다른 영향이 없었는데 인기도 없고 처음부터 정식 대리점 없이 보따리상 통해 들어왔기 때문)
무서운 속도로 타미야를 위주로 일본 제품들을 카피하여 쏟아내었습니다.
그 후 아시는 대로 타미야 모터라이즈 전차들이 카피판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무렵 저도 아카데미 전차 시리즈를 나오는대로 사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타미야를 위주로 일본 제품들을 카피하여 쏟아내었습니다.
그 후 아시는 대로 타미야 모터라이즈 전차들이 카피판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무렵 저도 아카데미 전차 시리즈를 나오는대로 사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타미야 1/35 MM시리즈 아카데미 카피 1호작은 1/35 M4A3E8 셔먼으로 기억합니다.
이 셔먼은 타미야에서 원래 모터라이즈로 출시하면서 형상을 변형했다고 합니다.
(기어박스가 들어갈 수 있도록) 이후 모델들 중 타미야에서는 디스플레이 모델로 나온 것을 아카데미가 개조하여 모터라이즈로 만든 게 많습니다.
(기어박스가 들어갈 수 있도록) 이후 모델들 중 타미야에서는 디스플레이 모델로 나온 것을 아카데미가 개조하여 모터라이즈로 만든 게 많습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설명서의 아카데미 로고를 기준으로 출시년도를 추정해보면
M4A3E8 다음에 M36 Jackson, M10, M551 Sheridan이 먼저 나오고 이후 치프텐, 센추리온 등이 나온 것으로 여겨집니다.80년대 초 아카데미 카피판은 저도 나올 때마다 반기며 구입했습니다.
원판을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이 너무 비싸니 품질이 비슷한 아카데미 카피판은
가난한 이 땅의 청소년들의 욕구를 해소시켜 준 고마운 선물이었습니다.
M4A3E8 다음에 M36 Jackson, M10, M551 Sheridan이 먼저 나오고 이후 치프텐, 센추리온 등이 나온 것으로 여겨집니다.80년대 초 아카데미 카피판은 저도 나올 때마다 반기며 구입했습니다.
원판을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이 너무 비싸니 품질이 비슷한 아카데미 카피판은
가난한 이 땅의 청소년들의 욕구를 해소시켜 준 고마운 선물이었습니다.
사전에 준비가 되어 있었던 아카데미는 경쟁 업체들과 차원이 다른 품질로
80년대 국내 프라모델 선두자리에 올랐습니다.
80년대 국내 프라모델 선두자리에 올랐습니다.
'외국제품과 비교하여 품질면에서 뒤지지 않으며...' 아이디어의 F-16 과대광고는
아카데미의 품질에 어울리는 카피(복제)제품의 카피(광고문구)였죠.
이 점에서 70~80년대의 아카데미는 존재의 이유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아카데미의 품질에 어울리는 카피(복제)제품의 카피(광고문구)였죠.
이 점에서 70~80년대의 아카데미는 존재의 이유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피제품을 수출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자 타미야로서는 분개할 일이었는데
한국의 경제정책과 세계적인 호황이 맞물려 고도성장을 하게되자 80년대 중반
통상압력이 들어왔고 무역개방과 함께 완구류 수입자유화 조치가 일어났습니다.
상황이 역전되었고 타미야가 다시 기회를 잡았습니다.
수입개방 조치 이후 타미야로부터 아카데미에 저작권 소송이 들어오자
세미나를 분사 설립하여 타미야 카피 금형들을 옮긴 후 (타미야는 이것을 위장 분사로 생각) 아카데미는 나몰라라 했고(카피금형 우리한테 없다)
세미나는 타미야 카피제품을 박스갈이로 한동안 판매하다가 의정부 공장 화재로
재고와 금형 모두 소실되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습니다.
재고와 금형 모두 소실되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습니다.


(걸리버모형회 선배 한분과 후배 두명이 당시 세미나에 근무했었기에
자주 방문했었고 세미나측에서 이성정밀에 YF-23 금형견적을 요청해서
제가 이성정밀 담당자 자격으로 방문하여 상담한 적도 있었습니다.)
자주 방문했었고 세미나측에서 이성정밀에 YF-23 금형견적을 요청해서
제가 이성정밀 담당자 자격으로 방문하여 상담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몇몇 일본업체들의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결국 아카데미의 정직하지 못한 판단이
한국과 한국인의 격을 더 밑바닥으로 떨어트린 사례였습니다.
80년대 아카데미 카피판은 한국의 모형계에 남긴 '빛과 그림자' 였습니다.
아카데미를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프라모델 기업이기에 예를 들어 중점적으로 언급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당시 국제 무역협정에 가입하지 않았기에 카피가 불법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프라모델 기업이기에 예를 들어 중점적으로 언급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당시 국제 무역협정에 가입하지 않았기에 카피가 불법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당시 열렬한 아카데미 제품 구매자 였습니다.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역협정 이후 타미야에 대한 태도에 있었습니다.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역협정 이후 타미야에 대한 태도에 있었습니다.
타미야 카피금형들의 행방이 묘연해진 이후 타미야 베이스에 옵션부품을 추가한
아카데미 (짬뽕카피) 제품들이 나왔고 이 역시 타미야를 분개하게 하여 독일 모형팬
시상식 집단퇴장사건 (메르카바 Mk.2로 기억) 등 잡음이 계속 들려왔습니다.
아카데미 (짬뽕카피) 제품들이 나왔고 이 역시 타미야를 분개하게 하여 독일 모형팬
시상식 집단퇴장사건 (메르카바 Mk.2로 기억) 등 잡음이 계속 들려왔습니다.

반면 반다이 카피제품에 대해서는 반다이 관계자들 앞에서 사죄의 표시로
카피금형을 공구로 파기하는 퍼포먼스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갔습니다.
(제가 직접 현장을 목격한 것은 아니고 당시 모형업계의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당시 한국의 삼성을 능가하는 매출을 올리던 반다이의 로비설 소문이 있었고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TV 생방송으로 직접
대국민 연설과 설득을 하면서 일본문화의 전면 개방을 선언했습니다.
모형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만화, 애니메이션 개방이었고 빗장이 풀리며
건담이 그 최대의 혜택을 받아 이후 반다이는 천문학적인 돈을 쓸어갔습니다.
카피금형을 공구로 파기하는 퍼포먼스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갔습니다.
(제가 직접 현장을 목격한 것은 아니고 당시 모형업계의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당시 한국의 삼성을 능가하는 매출을 올리던 반다이의 로비설 소문이 있었고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TV 생방송으로 직접
대국민 연설과 설득을 하면서 일본문화의 전면 개방을 선언했습니다.
모형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만화, 애니메이션 개방이었고 빗장이 풀리며
건담이 그 최대의 혜택을 받아 이후 반다이는 천문학적인 돈을 쓸어갔습니다.
(아카데미는 반다이, 손오공은 다카라와 제휴)
제가 1980대 중반 이후 ~ 현재까지 정치권과 업계를 비판하는 부분은
과거 70년대~80년대 초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 대회, 과학경진대회 등
전국민 과학화 정책이 순수성을 잃고 상업성으로 물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각종 경진대회가 업자들과 정치권, 공무원, 교사들과 결탁하여
비리(불법 개조로 성적 조작)가 만연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갔습니다.
과거 70년대~80년대 초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 대회, 과학경진대회 등
전국민 과학화 정책이 순수성을 잃고 상업성으로 물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각종 경진대회가 업자들과 정치권, 공무원, 교사들과 결탁하여
비리(불법 개조로 성적 조작)가 만연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갔습니다.
대표적인 종목이 고무동력기, 미니4구 대회였습니다.
외국모형업체, 한국금형업체들을 망하게 만든 중간알선업자들과 모형업계 전반에 대한 조금 비판적이고 신규업체들이 주의해야 할 이야기를 다음 회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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