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가고시마 여행 중 들린 "치란 가미카제 평화 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가미카제에 대해서는 모르시는 분들이 없을 것이지만 가미카제 박물관은 다소 생소한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늘 아픈 역사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이고 아니 그런 것을 기념하는 박물관이라니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제가 이 박물관을 알게 된 것은 한 TV 다큐멘터리에서였습니다. 이 박물관에 조선인 가미카제 파일럿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언젠가 이 지역을 여행한다면 꼭 들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감성적인 호기심은 적었고 대체 무엇을 기념하고 있을까가 궁금했고 전시된 일본군 전투기가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가고시마 시내에서 치란 평화 박물관까지는 승용차로 약 40분 정도가 걸립니다. 치란은 전생 당시 가미카제 기지가 있던 곳입니다. 길이 꼬불꼬불한 산길이라 실제 거리보다는 조금 더 걸리는 거리인데 가는 길은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습니다.
박물관에 도착하면 옥외에 두 대의 기체가 전시된 것이 보이고 커 보이지 않는 박물관에 눈에 들어옵니다. 500엔의 입장료가 있으며 200엔을 더 내면 한국어로 된 오디오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박물관은 초입에 제로 52형이 전시된 공간을 제외하고 모두 사진 촬영 금지 구역입니다. 그런 이유로 내부는 촬영을 못 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겠네요.
홀 입구에는 반파된 제로 52형 실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오랫동안 바닷속에 있었던 탓에 매우 심하게 부식되어 있습니다. 기체는 조종석 뒷 부분이 유실된 상태인데 부식은 되었지만, 원형은 많은 부분 잘 보존된 상태입니다.



이 기체는 전생 중 가고시마현 한 마을 앞바다에 불시착했다는 정보를 근거로 수색에 나서 1980년 1월 위치를 확인, 동년 6월에 인양에 성공한 기체입니다. 이 기체는 45년 5월 오키나와 전투 당시 불시착한 기체로 동체 후미는 산산이 부서져 인양을 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이 기체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물론 안내판에는 손대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거리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비록 바닷물에 심하게 부식된 상태지만 이렇게 가깝게 관찰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흥미로웠고요, 그런데도 아무도 손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체 주위에는 다른 곳에서 수습된 관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조종석의 일부, 프로펠러, 낙하용 연료 탱크, 녹슨 탄환, 정비 지침서로 보이는 문서까지 다양한 관련 아이템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중의 하나 재미있었던 품목은 미주리호에서 수습된 파편으로 미주리호에 공격을 가하다 충돌 후 격파된 제로 전투기의 파편을 미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쉽게도 사진은 못 찍었는데 그냥 구겨진 깡통 조각이라도 믿을 수 있는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사진 촬영은 여기까지만 허용이 됩니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가미카제 조종사들이 출격 전 남긴 편지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형제에게 부모에게 남긴 편지들인데요, 몇 개의 편지는 영어로 번역되어 있어 대강 내용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미카제 조종사들은 치란 기지에서 출격 대기 상태로 다소 한가한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죽기 위해 출격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했겠지요. 대기 중 출력 명령을 받으면 이렇게 편지를 남기고 유서를 쓰는 모양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당연히 검열을 받았을 테니 상상하시는 그런 내용입니다. 다만, 제가 느낀 점은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써야 했던 17살, 18살 청소년들이 마음 아프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이 편지를 받을 부모들은 아무리 광적인 전쟁에 취해있던 시기라 하더라도 과연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있는 처지에서 참 생각이 많았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국적과 상관이 없으니까요.
전시장 내부로 더 들어가면, 조종사들의 사진과 이름이 걸린 큰 전시실이 나옵니다. 제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그 광경이네요. 같이 갔던 아내가 3명, 전 1명의 조선인 이름을 찾았습니다. 나이는 17세더군요.
여기서 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조선인 조종사들의 이름이 적지 않게 걸려 있을까? 우리 처지에서는 왜 우리 청년들이 저기서 가미카제를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이들의 입장에서는 국적이 다른 조선 청년들이 가미카제를 했다는 것을 감추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가미카제였으니까요.
전시실 안에는 정말 너무나 깨끗한 상태의 Ki-84 하야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국으로 노획되어 70년대까지 비행이 가능했던 기체입니다. 일본으로 반환되었다가 어이없게도 부품을 도난당해 더는 비행이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기체가 너무 깨끗해서 모형인 줄 알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역시 촬영 불가. 제가 갔을 때는 기체 일부를 보수 중이었습니다.
전시장의 다른 부분은 전쟁 중 사용된 군복, 총기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구 일본군 무기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참고가 될 유물이 많더군요. 다르게 보면 여기는 태평양 전쟁의 작은 기념관이었습니다.


옥외 전시장에는 두 대의 기체가 전시되어 있는데 한 대는 전후 사용된 기체라 큰 관심이 없었고 한 대는 실물 기체가 아닌 모크업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 촬영을 위해 만들어진 1식 전투기 "하야부사" 입니다.
이 모형은 2007년 작 "나는 너를 위해 죽으러 간다~"(정확한 번역인지는 모르겠습니다)라는 영화에서 사용된 것입니다. 설명에는 무참히도 아름다운 청춘을 그린 영화 어쩌고 저쩌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국수주의 영화로 알려져 있고 조선인 가미카제 조종사도 나온다고 하더군요. 앞에서 언급한 전시장 내 조선인 조종사 사진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상 수박 겉핥기식의 박물관 기행을 마칩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느끼는 점이 다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저는 즐겁고 들뜬 여행 기간이었지만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모델러로 그리고 현재를 사는 한국인으로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지역을 여행한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들러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