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각궁에 대해.
우리나라 전통 국궁은 다른 말로 각궁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각궁은 물소의 뿔이 그 재료중의 하나로 사용되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런 제작방식은 몽골이나 터키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탄성과 성능에 있어서 한국의 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집니다.
4000년 이상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벼우며 효과적인 활을 제작하고 사용한 나라였습니다.

(현대에 제작된 각궁)
옛날 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국궁을 사랑하고 수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다만 요즘 사용하는 각궁은 임진년에 전쟁에 사용된 활과는 좀 다릅니다.
현대에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활들은 모두 수련및 수렵용 활로 전투용과는 그 재료와 제작방법, 생김이 모두 다릅니다.조선 초중기, 특히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전투용 활은 6가지 재료로 만들어 졌으며(요즘 활은 7가지 재료로 만든다), 복합궁의 단점인 습기에 약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활에 옻칠을 해서 전체적으로 검정색으로 보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요즘 활이나 수련용 활은 복합재료들이 오래 버틸 수 있도록 굳이 옻칠을 하지 않고 재료가 공기를 접하며 숨을 쉴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전투용 활은 비가 온다고 전투을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활의 수명이 좀 줄어들더라도 습기의 영향을 덜 받도록 옻칠을 한 것입니다.

(태조 이성계의 활, 북한 소재, 일제때 촬영된 사진)
모양 역시 요즘 활과 임진왜란 당시의 활은 좀 달랐습니다.
현대에 전래되는 것이 모두 조선후기의 수련/습사용 활이다보니 생긴 변화인데, 조선초기의 전투용 각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 북한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활입니다.(일제때 촬영된 사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일본에 임란 당시의 전투용 활이 전시되고 있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고, 제가 아래 소개하는 사진은 국궁 동호인들이 밝혀낸 프랑스의 활 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중기 각궁입니다.

(프랑스 활 박물관에 소장중인 조선 초~중기 활)

당대 각궁의 특징은 전투용 답게 활이 좀더 두껍고 넓으며 튼튼해 보이며, 형태도 현대의 각궁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유물 중에는 옻칠이 된 것도 있고 안된 것도 있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조선 추중기 각궁의 형태는 서로 다른 곳에 소장된 수점의 유물들의 형태와 만듦새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아래 제가 제시한 사진과 같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에 제작하는 이순신 장군 역시 그의 허리에는 활이 빠질 수 없습니다.
비록 축소 모형이긴 합니다만 아마도 국내 최초로 제작되는 조선 초중기 전투용 활의 재현이 될 것 같습니다.

정탈목에서 고자로 이어지는 선이 아주 오묘하고 멋집니다. 마치 학의 목을 보는 느낌입니다.
조선 초중기 각궁은 요즘 활과는 달리 고자목의 꺽임이 아주 예리합니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는 활이지만 작고 가벼우면서도 뛰어난 성능을 내기위해 우리나라의 각궁은 매우 복잡하고 오묘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활의 몸통만 해도 부위에 따라 두께와 폭이 다 다릅니다.

모형 재료의 특성상 실제 활처럼 탄성을 가진 소재로 재현할 수 없어서 실물처럼 시위를 내린 모습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