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푸라는 영화를 보지 못했으면 영화를 일절 논할 수가 없다던데 여러분은 그 영화를 보셨나요??? 이공 계통의 어떤 극도로 전문적인 것과 관련된 게 아닌 이상, 즉 그냥 우리네 일반적인 문화 생활과 관련된 것중에서 어떤 작품이나 철학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걸 보지 못했거나 미처 접하지 못했다면 그 작품이나 철학이 속한 장르 내지 분야 전체를 일절 논할 수가 없다라는 주장에 여러분 동의하실 수 있나요? 그것도 그냥 자신만의 사견으로만 가볍게 내세우지 않고 우호적인 만남의 장에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면서 오로지 자신만이 옳다면서 상대방에게 위와 같은 주장을 막 강요한다면 이게 그냥 웃어넘겨야 할 일인가요???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지난 한글날 최근 가깝게 지내게 된 황모씨와 함께 늘 그 양반과 행동을 같이하는 듯한 자칭 타칭 교수인 최모씨와 모형에 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려 별도로 만났었습니다. 분위기가 처음엔 아주 좋았지요. 그렇지만 키트 수집에도 열을 올리는 황모씨와 저와는 달리 사재기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는 최모씨는 좀 지루해 하는 듯도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양반을 나름 위해서 저처럼 영화에 관심이 많다 하길래 분위기도 살릴겸해서 "이젠 그럼 우리 최근에 각자 재미있게 본 전쟁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했습니다. 아니 그랬더니 대뜸 그 최모씨 왈 "수준에 맞는 전쟁영화가 없어 보지를 않는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군요. 저와 황모씨가 키트 수집에 대해 집중한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좀 삐딱하게 나가나 싶었습니다. 약간 어색해질려는 순간 현명한 황모씨는 재빨리 "그럼 재미있게 본 다른 일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부탁하자 그는 국내에선 미처 상영되지 않았던 영화를 거론하면서--사실 너무 일방적인 매도가 될 듯해서 당시 이 양반이 우리나라 국민의 수준과 관련해서 한 말이 있지만 이건 생략하겠습니다;;--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황모씨는 화장실인지 전화연락 때문인지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저는 좀 지루하지만 그냥 그 최모씨의 설명을 끈기있게 들어주다 그래도 맞장구를 좀 쳐주어야 좋겠지 하는 차원에서 어떤 풍광의 장면에 대해 강조하길래 그럼 "그 장면의 의미가 뭐라 생각하세요?"라고 우호적으로 공손하게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 양반은 뭐라 설명을 하던 중 이내 말문이 막히자 갑자기 스스로 말을 끊고 저한데 "아푸라는 영화를 보셨어요?"라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저는 그냥 사실대로 "아니요."라 대답했는데 그 즉시로 "영화 아푸를 보지 않았으면 함께 영화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라고 저한테 꾸지람조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니, 저도 영화를 사랑하고 꽤 많이 보았는데 제가 처음 들어본 그 아푸라는 영화가 도대체 얼마나 중요하길래 그것을 못 본 저는 그 양반과 함께 영화에 대해 대화도 할 수 없다는 것인지..., 너무나도 황당해서 처음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아니, 그런 게 어디 있나요??? 어떤 특정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해서 영화를 논할 수 없다니욧?!!"하고 반문하자 그는 추가적인 설명은 없이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이때 즈음해서 황모씨도 자리에 다시 돌아와서 냉랭해진 분위기에 놀라고 있었는데 저는 그래도 그때까지는 이게 일반론 수준의 주장은 아니고 아까 설명하던 그 국내 미개봉 영화와 관련해서만 아푸라는 영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는 쪽으로 갈줄 알았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 양반 주장의 핵심은 아푸라는 영화를 보지 못했으면 일체 영화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식이었고 저는 자신과 영화를 함께 논할 자격이 없다는 식이었지요. 나아가 아푸라는 영화가 뭔지는 일체 언급도 없이 갑자기 자신이 철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라는 것을 내세울 요량이었는지 칸트를 언급하면서 "칸트를 모르고 철학을 논할 수 있어요? 없죠!! 마찬가지예요!!"라고 하더군요. 저도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도 서양철학을 진지하게 공부했던 입장인지라 "전혀 그렇지 않아요!! 칸트를 몰라도 철학을 물론 논할 수 있지요!!"라고 반박했죠. 자신의 주장들을 전혀 제가 받아들이지 않자 이 양반은 점점 마구 마구 흥분하더니 그 사람 많은 카페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흥분했는지 손을 부르르 떨면서 아예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자신의 입장만이 옳다고 외쳐대는 데 이르렀어요. 그런 와중에 정말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도 했는데 일체의 과장없이 그대로 옮겨보면 "아니 성시경씨 블로그를 모르고 1970년대 프라모델을 논할 수 있나요? 불가능하죠?!!" 그러더군요. 저는 정말이지 어이가 없어 전혀 그렇지가 않음을 반박했는데 앞서 황모씨가 제 블로그에 대해 칭찬을 했었기에 그런 식으로 예를 들면 제가 선뜻 수긍할 줄 착각했나봅니다.;;;; 사실 제가 블로그에서 "1970년대 프라모델"이란 일련의 시리즈 게시물을 올리긴 했고 인기도 있었지만 벌써 수년전에 올린 것들인지라 오류도 심심치 않게 많아 저얼대로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지도 않고 조만간 개정판식 게시물들을 특집으로 꾸며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 모든 해프닝을 황모씨도 다 지켜보았는데 눈치가 빠른 그 양반이 서둘러 그만 영화 이야기는 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자 해서 일단락은 되었습니다...만, 세상에, 최근 수년동안 가장 불쾌했고 황당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거의 한 달이 지나간 만큼 그냥 잊어버리려 했는데 어제 밤인가 문득 포럼에서 영화 레바논에 대해 올려진 게시물에 다른분이 조금 무리한 주장을 하자 그걸 아주 점찮게 꾸짖으면서 하도 바른 말만 하는 걸 보고--물론 아주 엄밀하게 따지면 "폭력"이란 용어와 "폭력성"이란 용어의 차이도 무시한 듯 싶었지만;;--제가 이게 동일인인가 하고 딴지를 걸었더니만 이에 대해 그때의 일에 대한 반성과 정중한 사과는 커녕 그냥 무시를 하면서 황모씨에게 연락해 애둘러 저한테 그 댓글을 삭제해달라는 메시지를 암암리에 전하려 해 당시의 불쾌했던 그 모든 느낌들이 되살아났고 해서 이렇게 나름의 정리글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