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만의 경주박물관 방문, 위대한 유산들과의 재회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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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5 15:45:53,
읽음: 438
노승욱
지방러 분들 하비페어 오시느라 고생하실 텐데
저는 반대로 그분들이 (특히 대구, 경북지역) 부럽습니다. ^^
지난 4월 24일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1983년) 수학여행 이후 43년만 입니다.
대부분 가보셨을 테니 사진보다는 제 소감과 의견을 위주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경주 방문은 몇 차례 있었지만
유산들을 둘러볼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고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업무(취재)차 방문이어서 작심하고 계획을 세우고 밤새 운전해서 갔습니다.
피로에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경주는 제 마음의 고향인 곳입니다.
'신라의 달밤' 노래를 들으면 순간 신라의 거리로 타임슬립을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살고 싶은 시대와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제게는 단 하나 바로 통일신라시대의 경주입니다.
가능하다면 사업장을 경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한데
최소한 분점(전시장 겸 연구실)은 운영하고 싶습니다.
43년 전과 달라진 느낌은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마치
'과거의 반복처럼 느껴진다' 는 것인데요
전생에 신라 시대에 살면서 예술과 공학 즉
건축, 조각, 주조 등의 작업을 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신라 금관, 석굴암, 첨성대, 다보탑, 석가탑, 성덕대왕신종 (에밀레종) 등
문화유산 앞에 서면 교감이 일어납니다. (비전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라의 문화유산들은 대부분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대단하지만
그 중 에밀레종의 압도적인 미려함, 위용과 제작 난이도를 생각하면 그저 숙연해집니다.
종소리를 듣는 모든 이들을 참회하게 만드는 '역사상 최고의 종'
당대 세계최고의 조형예술과 금속공학은 신라에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조선후기의 패배감에 찌들어 그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었죠.
저는 반대로 그분들이 (특히 대구, 경북지역) 부럽습니다. ^^
지난 4월 24일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1983년) 수학여행 이후 43년만 입니다.
대부분 가보셨을 테니 사진보다는 제 소감과 의견을 위주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경주 방문은 몇 차례 있었지만
유산들을 둘러볼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고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업무(취재)차 방문이어서 작심하고 계획을 세우고 밤새 운전해서 갔습니다.
피로에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경주는 제 마음의 고향인 곳입니다.
'신라의 달밤' 노래를 들으면 순간 신라의 거리로 타임슬립을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살고 싶은 시대와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제게는 단 하나 바로 통일신라시대의 경주입니다.
가능하다면 사업장을 경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한데
최소한 분점(전시장 겸 연구실)은 운영하고 싶습니다.
43년 전과 달라진 느낌은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마치
'과거의 반복처럼 느껴진다' 는 것인데요
전생에 신라 시대에 살면서 예술과 공학 즉
건축, 조각, 주조 등의 작업을 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신라 금관, 석굴암, 첨성대, 다보탑, 석가탑, 성덕대왕신종 (에밀레종) 등
문화유산 앞에 서면 교감이 일어납니다. (비전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라의 문화유산들은 대부분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대단하지만
그 중 에밀레종의 압도적인 미려함, 위용과 제작 난이도를 생각하면 그저 숙연해집니다.
종소리를 듣는 모든 이들을 참회하게 만드는 '역사상 최고의 종'
당대 세계최고의 조형예술과 금속공학은 신라에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조선후기의 패배감에 찌들어 그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었죠.
1- 주말은 번잡하니 평일로 정하고 새벽 3시 파인스케일 스탭들 태우고 파주에서 출발,
오전 8시경 경주에 도착했습니다.
오전 8시경 경주에 도착했습니다.

2- 불국사 앞을 지나 토함산에 올라가서 석굴암부터 관람.
석굴암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서 외부만 촬영했고
본존불(석가모니불)을 유리창 너머로 직접 뵌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석굴암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서 외부만 촬영했고
본존불(석가모니불)을 유리창 너머로 직접 뵌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석굴암과 본존불은 이미 상세한 사진자료가 많이 있어서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석굴암은 화강암으로 만든 조각들을 블럭처럼 쌓아올려 만든 인공석굴입니다.
석굴암은 화강암으로 만든 조각들을 블럭처럼 쌓아올려 만든 인공석굴입니다.
故한석홍 작가님 기증 사진자료(석굴암) 중 (비도에서 바라본 본존불)

너무도 다루기 어려운 화강암으로 그 섬세함을 표현하다니 (당시의 공구만으로 !)
비슷한 일을 하는 입장에서 공구에 관심과 궁금증이 있어서 자료들을 통해 연구해보니
당시 접쇠단조기술(일본 사무라이 칼 '카타나'의 제작기법)을 개발한 것 같습니다.
이 기술로 현대의 기술로도 어려운 에밀레종의 걸쇠(고정핀) 제작도 가능했겠죠.
(이 고정핀에 대해 에밀레종 편에 추가설명 이어집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입장에서 공구에 관심과 궁금증이 있어서 자료들을 통해 연구해보니
당시 접쇠단조기술(일본 사무라이 칼 '카타나'의 제작기법)을 개발한 것 같습니다.
이 기술로 현대의 기술로도 어려운 에밀레종의 걸쇠(고정핀) 제작도 가능했겠죠.
(이 고정핀에 대해 에밀레종 편에 추가설명 이어집니다)
3- 석굴암에서 내려와 불국사 관람

다보탑과 3층 석탑(석가탑) 촬영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은 묘법연화경(법화경)의 세계를 축소하여
인간세계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든 상징적 모형입니다. 스케일 모형! (실물크기 아님)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은 묘법연화경(법화경)의 세계를 축소하여
인간세계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든 상징적 모형입니다. 스케일 모형! (실물크기 아님)


법화경에 나오는 다보탑의 높이는 500유순 (1유순은 10~16km) 이므로
환산하면 5,000~8,000km 입니다.
불국사 다보탑은 높이 약 10m 따라서 1/50만~1/80만 스케일의 모형이 되겠네요.
사실 모든 불상들도 이렇게 축소하여 제작된 것입니다.
환산하면 5,000~8,000km 입니다.
불국사 다보탑은 높이 약 10m 따라서 1/50만~1/80만 스케일의 모형이 되겠네요.
사실 모든 불상들도 이렇게 축소하여 제작된 것입니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반드시 쌍탑으로 세워야 합니다.
불국사는 천태종의 근본경전 '법화경'에 따라 만든 사찰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묘법연화경(법화경)'으로 검색하여 보세요.
제 개인적으로는 한,일 불교에 대한 오랜 궁금증과 오해가 풀린 부분이 있는데
고려시대까지 우리민족 최대의 불교 종파였던 천태종의 염불 중 하나인
'나무묘법연화경'의 일본어 발음이 '남묘호렌게쿄' 입니다.
불국사는 천태종의 근본경전 '법화경'에 따라 만든 사찰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묘법연화경(법화경)'으로 검색하여 보세요.
제 개인적으로는 한,일 불교에 대한 오랜 궁금증과 오해가 풀린 부분이 있는데
고려시대까지 우리민족 최대의 불교 종파였던 천태종의 염불 중 하나인
'나무묘법연화경'의 일본어 발음이 '남묘호렌게쿄' 입니다.
4- 첨성대(瞻星臺)
예전에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단체로 첨성대에 올라가 매달려서 사진 많이 찍었죠
저는 만류했지만 우리 학교 녀석들도 많이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첨성대에 일부 변형이 가고 기울어졌나 생각이 듭니다.
몇년 전 지진으로 조금 더 기울어졌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천문대로 알려졌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으나
첨성대(瞻星臺) 라는 글자(한자)를 단순하게 해석한 것입니다.
삼국유사에 점성대(占星臺)라고 쓴 내용이 있어서
'점을 치는 곳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 견해는 '천문관측기구' 입니다.
해시계 같은 원리로 첨성대 외부와 내부(창문처럼 생긴 사각 구멍)의 그림자를 측정하여
태양의 위치(공전궤도상의 지구의 기울기 방향과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구
조선시대에도 기본적으로 음력을 사용했지만 농업은 태양에 의존해야 했기에
양력기준인 24절기를 사용했는데 신라는 첨성대를 통해 24절기를 정확하게 산출해서
농사 및 다른 여러가지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첨성대(瞻星臺) 라는 글자(한자)를 단순하게 해석한 것입니다.
삼국유사에 점성대(占星臺)라고 쓴 내용이 있어서
'점을 치는 곳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 견해는 '천문관측기구' 입니다.
해시계 같은 원리로 첨성대 외부와 내부(창문처럼 생긴 사각 구멍)의 그림자를 측정하여
태양의 위치(공전궤도상의 지구의 기울기 방향과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구
조선시대에도 기본적으로 음력을 사용했지만 농업은 태양에 의존해야 했기에
양력기준인 24절기를 사용했는데 신라는 첨성대를 통해 24절기를 정확하게 산출해서
농사 및 다른 여러가지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선덕여왕 재위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대략 1,400년 전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세차운동으로 지구 축이 틀어져서 이제는 측정값이 맞지 않게 되었죠.
지면에서 10m 더 높이 올라가서 별을 관측하겠다고 천문대를 세웠겠습니까 ?
그냥 토함산에 올라가는 편이 나았을 테지요.
어느 박물관에는 첨성대 위에서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는 디오라마도 있더군요.
그 긴 시간 동안 세차운동으로 지구 축이 틀어져서 이제는 측정값이 맞지 않게 되었죠.
지면에서 10m 더 높이 올라가서 별을 관측하겠다고 천문대를 세웠겠습니까 ?
그냥 토함산에 올라가는 편이 나았을 테지요.
어느 박물관에는 첨성대 위에서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는 디오라마도 있더군요.
2부에서는 경주박물관, 에밀레종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