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키하치로(上田毅八)씨는 우리나라에는 코이케화백이나 타카니화백에 비해 그리 잘 안 알려져있습니다만, 일본 쪽에서는 모형 박스 일러스트레이터 중 최고참에 모형업계 전체를 통틀어 최고령 원로 그룹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우에다 키하치로 화백. 현재 만 93세. 모형 박스 그림뿐만 아니라 이런 일반적인(?)그림도 그리는 화가입니다.
1920년생인 우에다씨는 시즈오카 출신으로, 학생 시절부터 그림 쪽에 재능이 있었다고 합니다. 훗날 "내가 바다가 있는 시즈오카가 아니라 내륙에서 태어났다면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화백의 작품들 중에는 그냥 바다를 그린 그림도 많습니다.

소학교 졸업 후에는 재능을 살려 페인트공으로 취직을 했습니다.(미술 관련 학교? 그런 데는 고관대작집 자제들이나 가는 곳이었고...) 키가 작아서 징병검사때 보충역 판정을 받고 원래는 군대에 안 갈 예정이었는데...태평양 전쟁이 터지면서 보충역들까지 입대 크리. 주특기는 대공포병이었는데...배치된 곳은 육군 수송선단 대공포 부대라는, 육해공이 한데 어우러진 아스트랄한 곳...
분명히 육군에 입대하고 대공포병이 됐는데 바다로 나가게 된 걸 보면 이 양반, 정말 바다랑 인연이 있는 듯.
일단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게는 됐는데...대공포병이라는 게 공습이 있기 전에는 바다 위에서 워낙 할 일이 없는지라 항해중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을 그리면서 보냈다고 합니다. 주위의 다른 배들이나 바다의 파도,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틈날 때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상관 몰래 군사우편으로 집에 보냈습니다.(걸리면 기밀 누설이라...)
그러던 어느 날, 우에다씨가 탄 배가 트럭섬의 해군기지에 정박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에다씨는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전함 두 척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일본군의 초특급 기밀덩어리였죠. 우에다씨가 그 정체를 알게 된 건 전쟁이 끝난 뒤였습니다만...어쨌거나 우에다씨는 일본 모형계에서 유일한 '야마토를 직접 본 사람'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배에서 그림을 그릴 때 외에는 기관실에 가서 엔진 구경을 하기도 하고, 한번은 공습을 당했을 때 교전을 포기하고 선내로 대피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도 갑판에 남아 미군 비행기를 구경하다가 상관에게 "도대체 신경이 어떻게 된 놈이냐?"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합니다. 본인은 "배 안으로 피한다고 해도 어차피 죽을 상황이면 죽는다."라고 생각했다고.
타고 있던 수송선이 총 6번 격침당했다고 합니다. 그 중 한 번은 바다 위에서 8시간을 표류하다가 구조된 적도 있다고. 5번은 부상 없이 구조돼 바로 다른 배로 옮겨탔고, 6번째에서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피탄된 미군 뇌격기가 배를 들이받는 바람에 대폭발이 일어났고, 그때 오른쪽 팔다리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부상 때문에 오른손으로는 글씨를 쓰는 것도 힘들게 됐고, 병원에서 왼손 쓰는 법을 연습했다고 합니다. 그 후 날이 갈수록 군 병원에 환자가 늘어나는 바람에 목숨과 관련이 없는 부상자인 우에다씨는 사방의 육군병원으로 떠돌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옮겨가기로 되어있던 곳이 히로시마의 병원이었는데...히로시마 근처의 작은 역에서 열차가 정차해있을 때 창밖으로 버섯구름을 봤다고...
결국 열차는 도쿄로 향했고, 도쿄의 육군병원에서 패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잠시동안은 병원에 있었는데, 물자부족 때문에 날이 갈수록 병원 사정이 안 좋아져서 "나 그냥 집에 가서 치료하련다."라고 전역신고고 보고고 없이 그냥 짐 싸서 시즈오카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육군이 해체된 상황이니 처벌 같은 거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그런데 집에 돌아가니 식구들이 반가워하는 게 아니라 놀라기부터 하더랍니다. 집에는 히로시마에서 원폭 맞아 죽었다고 사망통지가 가는 바람에 장례까지 다 치렀다고...
그 후에는 다시 페인트공으로 일하면서 취미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쟁때 집에 보낸 스케치들이 멀쩡히 남아 있어서 그걸보고 기억을 떠올리며 바다에서 봤던 군함과 비행기들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물론 왼손으로요.
그러던 중, 집 근처에 살던 부자집 학생이랑 알게 됐는데, 그 학생이 우에다씨의 그림을 보고는 "시즈오카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라며 감탄하더랍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 학생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그림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그 학생의 이름이 타미야 순사쿠. 사람 하나 잘 사귄 덕분에 페인트공에서 화가로 전직.
그 후 초창기 타미야 제품들 뿐만 아니라 아오시마나 하세가와 같은 다른 시즈오카 모형 메이커의 박스아트도 그리게 됐고, 워터라인 시리즈가 시작됐을 때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90년대 말에 나온 타미야의 신금형 워터라인 야마토의 박스아트도 우에다씨의 작품. 군함 뿐만 아니라 기차, 자동차는 물론 SF모형의 박스아트도 다수 담당했습니다. 위에서 적었듯이 모형용 그림 외에 풍경화 같은 것도 그리고요.
납기가 생명인 페인트공 출신이라 그런지 그림공장 수준의 작업속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의 이발소 그림 수준의 속도로 작품을 뽑아내는데, 퀄리티는 이발소 그림이랑은 비교가 안 되지요.(회사 담당자들이 좋아하는 타입.) 본인 말로는 페인트공 시절에는 휴일 같은 건 존재하지가 않았다고...
(여담입니다만, 작업속도 면에서 정반대의 타입이 타카니 요시유키 화백. 타카니화백은 본인부터가 모델러라 신제품 박스아트 의뢰하면서 참고하라고 시사출을 갖다주면 일단 그것부터 조립해서 도색 완성까지 하는 바람에 납기가 늦어져서 요즘은 아예 시사출도 안 갖다준다고...)
정식 미술교육 같은 건 받은 적도 없고, 부상으로 오른손을 못쓰게 됐으면서도 마지막에는 화가로 이름을 남기게 된 우에다 키하치로 화백. 그야말로 영화같은 인생입니다. 우에다씨는 미국과의 전쟁을 겪으면서 '싸우는 법'을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맨손으로, 정신론만으로는 인생과의 싸움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싸움에는 제대로 된 무기가 반드시 필요하며, 지식이 바로 그 무기라고 말이지요.
(원래는 우에다화백 생일인 8월 30일에 올리려고 했는데, 그냥 좀 일찍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