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모형을 하면서 겪어온 것에 비추어 보면 모델러들의 가장 강력한 적은 바로 가족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모델러들이 남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바로 아내들이 적이지 싶습니다. 가장 든든한 우군이고 믿음직스러워야 할 편인 아내가 가장 완강하고 이길 수 없는 적이 되는 것이 바로 모형이 아닌가 합니다.
아내들이 보기에 자기 남편이 모형이라는 취미만 버리면 모형을 만들 시간에 자기하고 놀아주고, 키트를 살 돈으로 자기한테 꽃다발을 사오거나 맛있는 것을 사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 그건 야무진 착각입니다. 모형을 안하게 되면 그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을 아내한테, 그리고 아이들한테 쏟아서 더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모형을 안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도파민을 분비시켜 줄 다른 것을 찾아서 헤매게 됩니다. 그 대상이 결코 아내나 자식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형보다 더 많은 돈이 들고, 더 많은 시간이 낭비되고, 더 위험하고, 더 건강에 좋지 않은 다른 일에 매달리게 됩니다. 모형을 할때는 그래도 집에나 붙어 있었지만 모형을 단념하는 순간 남편은 집에 있지 않고 바깥에 돌아다니게 된다는 사실을 모델러의 아내는 모릅니다.
자기 남편의 취미가 모델링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운인 줄 아는 아내는 드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즐기는 취미생활 중에 모델링은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시간도 적게 먹히고, 무엇보다도 건전한 취미생활입니다. 아내가 마음 한번 고쳐먹으면 부부가 같이 즐길 수도 있는 취미생활이고, 아이가 크면 자식들도 함께 온 가족이 같이 할 수 있는 아주 드문 취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남편의 고상하고 경제적이며, 가정적이고 건전한 취미생활을 바가지와 잔소리, 몰이해와 핍박, 그리고 잔인한 탄압과 억압으로 포기시키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위는 없다는 것을 아내들은 알아야 합니다.
모형을 못하게 하면 그것은 집에 있는 남편을 집 밖으로 내쫓는 짓입니다. 10만원이면 될 일을 50만원 쓰게 만드는 짓입니다. 접착제나 도료의 냄새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데 그걸 모릅니다. 죽어도 참아주지 않습니다. 모형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남편의 고상한 모습이 쪼잔하게만 보입니다(저 나이에 지능 개발?). 10분의 1밀리를 다루는 초정밀작업이 어린아이 장난으로 보입니다.
온 세상을 설득하기는 쉬워도 아내를 설득하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저는 모델러 중에 그 일에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모델러에게 온 세상은 자기 편인데 아내만은 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에 부딪힌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것이 모형이라는 취미인 것 같고 남자 모델러들의 숙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내의 타박과 잔소리와 바가지를 견뎌내면서 오늘도 눈치밥 속에 탱크와 비행기를 가지고 노는? 이 땅의 모델러들에게 파이팅을 보냅니다.
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