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그램 킷(금형)과 관련된 비화 2부, 모델아트와 모형항공기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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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9 02:29:44,
읽음: 881
노승욱
모델아트 82년 7월호.
이 책이 제 인생에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Fokker D.VII 일러스트 때문입니다.
이 책이 제 인생에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Fokker D.VII 일러스트 때문입니다.
1년 후 이 일러스트는 제 인생의 향방을 바꾸게 됩니다.

1983년 남강고등학교 2학년 때 입니다.
당시 졸업 선배님들이 학교 항공부에 방문하여 만들고(킷 제작) 시험비행 중
지면에 강하게 충돌하여 파손된(꼬리부분 제외하고 기수 앞부분 절반이 가루가 된)
Fokker D.VII의 잔해를, 여름방학 때 종이백에 담아서 집에 가지고 와서 복원을 하게
되었는데 자료를 찾다가 기억이 나서 모델아트를 펼치니 이 일러스트가 보였습니다.
이 그림 한 장에 의지하여 복구 작업을 했습니다.
당시 졸업 선배님들이 학교 항공부에 방문하여 만들고(킷 제작) 시험비행 중
지면에 강하게 충돌하여 파손된(꼬리부분 제외하고 기수 앞부분 절반이 가루가 된)
Fokker D.VII의 잔해를, 여름방학 때 종이백에 담아서 집에 가지고 와서 복원을 하게
되었는데 자료를 찾다가 기억이 나서 모델아트를 펼치니 이 일러스트가 보였습니다.
이 그림 한 장에 의지하여 복구 작업을 했습니다.
그 나이와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가능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안됩니다.
며칠 비행기 앞에서 명상을 하면 복구하는 방법이 머릿속에 들어왔는데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여 영감(비전)을 받게 되었고 신기하게도 복원을 했습니다.
며칠 비행기 앞에서 명상을 하면 복구하는 방법이 머릿속에 들어왔는데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여 영감(비전)을 받게 되었고 신기하게도 복원을 했습니다.
그 전년도인 1982년 가을 (1학년 때) 글라이더를 항공부 전통 설계에 따라서 자작하여
공군참모총장배 대회에 첫 출전하였으나 그 날 강풍이 심하여
토우잉(견인)시 구조적 취약 부분인 날개 중앙부가 꺾이는 아픔을 맛 보았습니다.
원인은 기체 부위별로 구조적 강도에 맞는 소재를 써야 했으나
다양한 소재를 골라서 쓸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탓이었고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겨울방학 때 유선조종 킷으로 유명했던 (슈스트링으로 기억)
유선조종 기체를 집에서 만들어서 학교에 가지고 가서 선배님들의 칭찬을 받았었죠
(결국은 선배님들이 추락 파손시킴)
그 파손된 기체(구조가 비교적 단순)를 2학년 봄에 복구했던 적이 있었고
그런 다양한 경험이 있었기에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죠)
2학년 여름 복잡한 구조의 Fokker D.VII 복원을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시험비행도 무사히 마쳤고 그 후로도 잘 날았습니다.
공군참모총장배 대회에 첫 출전하였으나 그 날 강풍이 심하여
토우잉(견인)시 구조적 취약 부분인 날개 중앙부가 꺾이는 아픔을 맛 보았습니다.
원인은 기체 부위별로 구조적 강도에 맞는 소재를 써야 했으나
다양한 소재를 골라서 쓸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탓이었고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겨울방학 때 유선조종 킷으로 유명했던 (슈스트링으로 기억)
유선조종 기체를 집에서 만들어서 학교에 가지고 가서 선배님들의 칭찬을 받았었죠
(결국은 선배님들이 추락 파손시킴)
그 파손된 기체(구조가 비교적 단순)를 2학년 봄에 복구했던 적이 있었고
그런 다양한 경험이 있었기에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죠)
2학년 여름 복잡한 구조의 Fokker D.VII 복원을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시험비행도 무사히 마쳤고 그 후로도 잘 날았습니다.
복원 하면서 선배님들이 무엇을 놓쳤나? 추락 시 상황을 연구해보니
(기체가 조종자쪽으로 말려 들어옴, 원심력 부족)
무선조종(RC)으로 출시된 킷을 유선조종(UC)으로 개조할 때의 3대 포인트
(엔진의 설치각도, 수직꼬리날개의 방향타 각도, 조종 와이어의 각도)
설정을 잘못한 것으로 생각되어 철저히 준비하였고 이 후 비행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기체가 조종자쪽으로 말려 들어옴, 원심력 부족)
무선조종(RC)으로 출시된 킷을 유선조종(UC)으로 개조할 때의 3대 포인트
(엔진의 설치각도, 수직꼬리날개의 방향타 각도, 조종 와이어의 각도)
설정을 잘못한 것으로 생각되어 철저히 준비하였고 이 후 비행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이 복원된 Fokker D.VII 기체로 그 해 가을 대회 출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3학년 선배(당시 항공부 부장 천정우)가 빼앗아서(바꿔서) 나갔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43년만에 공식적으로 폭로 합니다.^^
1983년은 스케일 부문 출전자 수가 적어서 지상평가로 심사했고
제가 여름방학 내내 잔해를 복구하여 만들어낸 Fokker D.VII 이 1등을 했습니다.
1983년 금메달. 사진은 남아있지 않은데 공군사관학교 기록에 남아있을 겁니다.
바꿔치기 당한 기체로 출전하여 3위는 했습니다.
3학년 선배(당시 항공부 부장 천정우)가 빼앗아서(바꿔서) 나갔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43년만에 공식적으로 폭로 합니다.^^
1983년은 스케일 부문 출전자 수가 적어서 지상평가로 심사했고
제가 여름방학 내내 잔해를 복구하여 만들어낸 Fokker D.VII 이 1등을 했습니다.
1983년 금메달. 사진은 남아있지 않은데 공군사관학교 기록에 남아있을 겁니다.
바꿔치기 당한 기체로 출전하여 3위는 했습니다.
억울한 부분이 있었지만 '3학년이 되면 방해할 인간은 없겠지' 하며 다짐했고
새 킷트가 아닌 사고로 산산조각 난 기체의 잔해를 복구했던 경험들이
1년 후 완전 자작 제로기를 만들게 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회 중 친구가 도와주겠다고 나서서 믿고 맡겼으나
잔뜩 긴장한 친구의 실수로 1차 엔진시동 불발, 감점으로 결국 2등을 했습니다. ^^;
그냥 운명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유선조종 비행 모습 1984년 제로기 제작, 조종 노승욱

3위 수상의 곽영호 형님은 몇년 전 경남 사천에서 만났었습니다.
Fokker D.VII 로 출전하셨죠.
Fokker D.VII 로 출전하셨죠.

그 당시 1위 수상했던 송자영 형님은 일요일 하비페어에서 42년만에 상봉했습니다. ^^
논현공방의 그 송자영 작가님이 바로 대한민국 모형항공기 대회의 가장 빛나는
대회였던 1984년 1위 수상자 였다는 사실
아직도 모르는 분들 계시더군요. 스핏파이어 로 출전하셨죠.
논현공방의 그 송자영 작가님이 바로 대한민국 모형항공기 대회의 가장 빛나는
대회였던 1984년 1위 수상자 였다는 사실
아직도 모르는 분들 계시더군요. 스핏파이어 로 출전하셨죠.
좌측부터 곽영호, 노승욱, 송자영 (모두 MMZ 회원)

1980년대 당시 그 열악했던 환경에서 이뤄낸 앳된 청년들의 노력과 도전이
현재의 청년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도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결혼 대신 일을 선택했으니 당연한 것이겠죠. ^^
현재의 청년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도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결혼 대신 일을 선택했으니 당연한 것이겠죠. ^^
이상 1982년 우연히 구입한 모델아트 한권으로 인해 일어났던
그 인연과 집념어린 노력,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를 생각한 하루였습니다.
그 인연과 집념어린 노력,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를 생각한 하루였습니다.
다음편은 모노그램, 하세가와의 금형과 관련된 이야기를 위주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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