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모델 비화 8부, 취미가(HOBBIST)의 창간과 운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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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7 12:27:56,
읽음: 1146
노승욱
정확한 날짜나 시기에는 약간의 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료 정리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료 정리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번째의 금형공장 방문
1990년 2월 군 제대 후 복학까지 6개월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대영 선배님께 연락 드렸더니 이번에는 성수동으로 오라고 하십니다.
이성정밀 공장이 문래동에서 성수동으로 이전을 한 것이죠.
이제는 드래곤 금형들을 주로 제작하고 있었고 BMP-1 제작에 참고하기 위해서
구하셨다면서 어큐리트아머 사의 레진 킷을 가지고 설명을 하고 계셨습니다.
ESCI BMP-1도 이성정밀에서 제작을 했는데 어느 쪽이 먼저인지 기억이 희미합니다.
BMP-1 때문에 문제가 있었는데 같은 방전 전극을 사용해서 양사 금형 제작을 했기에
나중에 ESCI, 드래곤 양사의 항의가 있었다는 것은 기억합니다.
그 BMP-1 전극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BMP-1 때문에 문제가 있었는데 같은 방전 전극을 사용해서 양사 금형 제작을 했기에
나중에 ESCI, 드래곤 양사의 항의가 있었다는 것은 기억합니다.
그 BMP-1 전극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레진 킷을 목업으로 활용하는 방법(편법)을 알게 된 드래곤이
어큐리트아머의 레진킷을 목업 삼아 많은 전차들을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시 모형계에서는 이런 말이 돌았습니다.
'어큐리트아머가 힘들게 개발하고 만들어서 드래곤 좋은 일만 시켜준다.'
이런 풍조는 개라지 레진 킷 업계의 의욕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어큐리트아머의 레진킷을 목업 삼아 많은 전차들을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시 모형계에서는 이런 말이 돌았습니다.
'어큐리트아머가 힘들게 개발하고 만들어서 드래곤 좋은 일만 시켜준다.'
이런 풍조는 개라지 레진 킷 업계의 의욕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드래곤 초창기 몇 년 동안은
이런 식으로 레진 캐스트 제품을 카피하듯 인젝션화 한 제품들이 나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레진 캐스트 제품을 카피하듯 인젝션화 한 제품들이 나왔습니다.
(레진 캐스트 - 원형을 이용해서 실리콘 형틀을 만들어 우레탄 수지를 주형하는 공법)
(인젝션 - 금형을 이용한 사출성형)
(인젝션 - 금형을 이용한 사출성형)
하지만 레진캐스트 제품들에도 고증에 문제가 많았고 과거 이대영 선배님처럼
이를 교정, 보완해 줄 전문 인력이 없었던 드래곤은 제품에 대한 지속적인
오류와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늘어났고 결심한 듯 구판 킷을 갈아엎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유럽의 유명 전문가들을 영입하여 고증, 제작 감수와 설계를 맡기고
3D 설계와 CNC 공작기계를 도입, 활용하면서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용 플라스틱 원료(스틸렌 계열)도 자체 공장을 설립하여 공급했습니다.
이 때부터 드래곤은 본격적으로 타미야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되었습니다.
이를 교정, 보완해 줄 전문 인력이 없었던 드래곤은 제품에 대한 지속적인
오류와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늘어났고 결심한 듯 구판 킷을 갈아엎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유럽의 유명 전문가들을 영입하여 고증, 제작 감수와 설계를 맡기고
3D 설계와 CNC 공작기계를 도입, 활용하면서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용 플라스틱 원료(스틸렌 계열)도 자체 공장을 설립하여 공급했습니다.
이 때부터 드래곤은 본격적으로 타미야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되었습니다.
(조립성의 문제는 끝까지 극복하지 못함. 설계, 금형 기술자들의 모형 제작 경험 부족)
1990년 8월 말
복학하여 열심히 마지막 학기 몇 달 동안 일러스트 공부를 계속 했습니다.
그 결과 이런 그림들을 어렵지 않게 그려내는 레벨에 올랐습니다.
복학하여 열심히 마지막 학기 몇 달 동안 일러스트 공부를 계속 했습니다.
그 결과 이런 그림들을 어렵지 않게 그려내는 레벨에 올랐습니다.
1991년 1월 하세가와 박스아트로 유명한 고이케 화백의 그림을 보고
연필, 붓을 사용하여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 (배경에 에어브러시 일부 사용)
연필, 붓을 사용하여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 (배경에 에어브러시 일부 사용)
졸업작품으로 출품 (규격 550 x 370mm)

몇년 전까지 꿈꿔왔던 애니메이션은 이제 뭔가 시시하고 재미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89년 쇼와시대가 막을 내리고 버블경제가 붕괴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프라모델 등 업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80년대의 창의적이고 실험 정신 가득했던 작품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뭔가 힘이 빠지고 있다는 느낌에 애니메이션에 대한 더 이상의 열정은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는 반다이가 장악하여 건담, 에반게리온으로 도배했죠.
건담도 좋아 했지만 도가 지나친 독점욕, 상술에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겨울방학 졸업을 앞둔 그 시기
이대영 선배님이 취미가 창간호를 준비하시면서 모형 제작과 글을 쓰시느라
정신이 없으셨고 저도 디오라마 제작을 돕게 되었습니다. 제가 도와드린 것은
별것 아니었지만 함께 작업에 참여하면서 배우고 느낀 바가 컸습니다.
그리고 취미가 3호를 준비하시던 선배님께서 제게 작품 하나 만들어 보라고 하셨죠.
그렇게 타미야 M3 개조 M3A1을 제작하면서 느꼈던 소감은 취미가에 실려 있습니다.
일본 서적을 탐독하면서 키운 번역 역량도 기사를 쓰는데 한몫 했습니다.
당시 전문 스튜디오에 가서 촬영을 하면서 촬영기법을 배운 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에 출간된 책이고 못 보신 회원님들 위해서 스캔해서 올립니다.











원본 70mm슬라이드 필름을 찾았는데 필름 스캐너가 없어서 스캔은 못했습니다
표지에 쓰인 필름은 없고 기사에 실린 3장이 남아있습니다.
나중에 스캔을 하게 되면 갤러리에 올리겠습니다.
모형항공기 자작, 열정적인 미술공부의 결실이 여기에서 빛을 보았습니다.
이 작업을 계기로 타미야를 넘어설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이 작업을 계기로 타미야를 넘어설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대영 편집장님의 권유로 이성정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정식으로 입사한 것은 아니었고 계약직과 같은 형식이었죠.
타미야 같은 전문 모형 회사가 아닌 하청 금형 공장이었기 때문에
제가 완전히 몸담을 생각이 있는 회사는 아니었습니다.
서로 필요할 때 협의해서 일을 하자 이런 식이었습니다.
저도 그 방식이 훨씬 편했죠. 제 개인적인 작업을 할 시간도 필요했기에.
타미야 같은 전문 모형 회사가 아닌 하청 금형 공장이었기 때문에
제가 완전히 몸담을 생각이 있는 회사는 아니었습니다.
서로 필요할 때 협의해서 일을 하자 이런 식이었습니다.
저도 그 방식이 훨씬 편했죠. 제 개인적인 작업을 할 시간도 필요했기에.
다음 이야기는 이성정밀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들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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